[박근종 칼럼] 은마 화재로 드러난 ‘노후 아파트 안전 공백’, 판박이 반복에도 손 놓은 대책

편집국 / 기사승인 : 2026-03-06 17: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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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최근 노후 아파트와 실내 생활공간에서 발생하는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십 년 된 노후 아파트에서 화재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화재 초기에 불을 끌 수 있는 스프링클러가 있었다면 인명 희생을 막을 수 있었기에 ‘인재(人災)’나 다름이 없어 보인다. 1979년 준공된 은마아파트 단지는 현행 기준이 적용되기 이전에 건립된 아파트라 설치가 배제되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은 여러 차례 강화를 거듭해 왔다.

1992년 이후 고층 아파트를 중심으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가 단계적으로 부과됐으며, 이후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2조와 같은 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1992년 16층 이상에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2005년 11층 이상 전체에, 2018년부터는 6층 이상 아파트 전 층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문제는 기존 건물에 대해 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준공 시점에 따라 종전 기준이 적용된 아파트단지와 현행 기준이 적용된 아파트단지를 비교했을 때 설비 범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

지난 2월 24일 오전 6시 18분께 발생한 서울 강남구 14층 은마아파트 8층 세대에서 발생한 화재는 화마에 무방비인 노후 아파트 ‘안전 사각(死角)’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신속히 출동한 서울 강남소방서의 적극적인 소방 작전으로 불은 1시간여 만에 진화됐지만,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여학생은 탈출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베란다에서 숨졌다. 어머니는 얼굴에 화상을 입고 동생은 연기를 흡입하는 등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위층에 거주하던 50대 여성 1명도 연기를 흡입했다. 나머지 주민 70여 명은 화재 경보와 안내 방송을 듣고 스스로 대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79년 준공되어 47년이 경과(經過)한 4,400여 가구의 은마아파트 단지에는 스프링클러가 없다. 공동주택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규정이 1990년부터 적용됐기 때문이다. 비상 탈출할 수 있는 완강기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평소 닫혀 있어야 하는 방화문도 개방돼 있었다고 한다.

유사한 화재는 판박이처럼 되풀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오전 3시 43분쯤 발생한 화재로 70대 주민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연기흡입 등으로 부상한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1985년 준공)에도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지난해 8월 17일 오전 8시 10분께 서울 마포구 창전동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일가족 중 어머니와 아들 등 2명이 숨졌고, 아버지를 비롯한 주민 16명이 다치고 주민 89명도 긴급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지난해 7월 17일 경기 광명시 한 아파트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나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지난해 4월 21일 오전 8시쯤 방화로 사상자 7명이 발생한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에도 스프링클러와 완강기가 없었다. 2024년 8월 23일 오후 7시 39분쯤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해 무려 19명의 인명 피해를 일으킨 경기 부천 호텔 화재 당시에도 스프링클러가 없었던 점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기존 공동주택에도 2년 이내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화재에 노출된 노후 아파트의 방화체계를 보완하려는 제도 개선 움직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정치권에서도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를 담은 법안이 속속 발의됐지만 해당 법안은 무관심 속에 후속 노력이 이어지지 않고 모두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에 있다. 노후 주택이라도 배관공사를 하면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수 있지만 1,000만~3,000만 원의 공사비가 주민들에게 부담이라고 한다. 노후 아파트에는 10~20톤(t) 규모의 수조를 설치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건물 구조상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기본적 소방시설 미비로 사상자가 잇따르는 ‘후진국형 재난’에 마냥 손을 놓고 방치(放置)·방관(傍觀)·방임(放任)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후 건축물 특히 노후 아파트에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기 바란다. 일반제품의 3분의 2 정도 성능인 간이 스프링클러는 공간이 협소한 노후 아파트에서는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생명과 안전보다 더 앞세워야 할 가치는 없다. 우리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 동안 어느 한순간도 가슴밖에 둘 수 없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안전뿐이기 때문이다. 소방청은 전국의 모든 공동주택에 스프링클러를 소급 설치하는 경우 43조 원 넘는 돈이 들 것이라 추산했다. 막대한 비용인 것만은 명징(明徵)한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적극 검토해 볼 일임도 극명(克明)한 필요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3만 8,344건의 화재가 발생하여 346명이 사망하고 2,391명이 부상해 2,737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2조 3,473억 8,765만 9,000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2026년에 들어서도 2월 26까지 두 달도 채 못되어 7,718건의 화재가 발생하여 57명이 사망하고 446명이 부상해 503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1,187억 1,363만 4,000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소방청의 ‘2024년 화재통계연감’에 따르면 전국 화재 발생 건수는 3만 7,614건이다. 이 가운데 9,273건(24.7%)이 주거 등 생활공간에서 발생했다. 발화 지점별로는 주방이 4,359건(47.0%)으로 가장 많았다. 침실 1,289건(13.9%), 거실 1,251건(13.5%), 화장실 647건(7.0%)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생활공간에 가연성 가구와 침구류가 밀집해 있어 초기 대응이 지연되는 경우 화재 확산을 막을 ‘골든 타임(Golden Time)’을 놓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내 화재가 급격히 확산하면 공간 전체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 오버(Flash Over)’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전국 아파트 4만 9,810단지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곳은 2만 4,401단지(49.0%)에 달했다. 아파트 두 곳 중 한 곳은 불이 나면 소방대 출동에 의존해야 해 초기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미다. 지역별로는 제주가 807단지 중 698단지(86.5%)로 미(未) 설치율이 가장 높았다. 아파트가 가장 많은 서울은 1만 6,763단지 가운데 3,897단지(23.2%)가 스프링클러를 갖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소화기를 비치해 놓아도 스프링클러가 없다면 화재 초기 진압에 한계가 있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쉽지만 대안으로 기존 보일러실 등에 설치하던 ‘자동확산소화기’를 거실이나 침실 등 주거 공간에 적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자동확산소화기’는 화염이나 고열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터져 소화 약제를 분사하는 장치로 화재 초기 단계에서 연소 확대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배관공사가 필요한 스프링클러 설치와 달리 설치비는 10만~13만 원 수준으로 스프링클러보다 많이 저렴하다. 화재경보기와 소화전 확충과 함께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정기 점검도 강화해야만 한다. 당연히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검토도 긴요해 보인다. 배관 신설과 펌프실 확보 등 대규모 공사가 필요해 25평 기준 설치비가 500만 원대에 달한다. 안전 담보를 위한‘가치 있는 낭비(Valuable waste)’는 의당(宜當)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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